홍콩! 프리덤을 외치다! - 홍콩 송환법 철회 박수를 보낸다!!

#13 홍콩 - 아름다운 항구를 다시 돌아가기를 바래요~!! 내 사랑 홍콩!

홍콩 이번 시위에 대해 할 말은 많았지만, 철회를 했다는 기쁜 소식을 접하고, 홍콩에 관한 이야기를 블로그로 담아 보려 합니다.

위 사진은 캐리 람 행정장관으로  현지 시간으로 오늘 오후 6시 TV 방송을 통해 내보내진 녹화 연설을 통해 홍콩 시위대의 첫 번째

요구 조건을 받아들여 송환법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위대 요구에 모든 것을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우선 시위는 사그라들고 조금씩 홍콩의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기념으로 홍콩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려 합니다. 학원강사로 있을 때, 학생들이 홍콩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서 세계사

강의를 한 적이 많아서, 홍콩이 어떻게 홍콩이 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연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산 백과사전 캡쳐 이미지 입니다.)

홍콩의 한자를 풀이 하면, 향기로울 향(香), 항구 항(港), '향기로운 항구'라는  꽤 시적이고 감성적 낭만적인 이름으로  

이 도시에  귀한 향료와 향나무를 실어 나르던 무역항이 있었던 것에서 비롯된 뜻입니다.

香港을 베이징 말로는 '시앙강', 광둥어로는 '헝꽁'으로 발음한다. 지금의 Hong Kong이라는 공식 명칭 또한 헝꽁을 영어로

발음한 것으로 지금의 "홍콩" "Hongkong"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필자가 홍콩여행 당시 촬영한 사진입니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촬용한 홍콩의 모습입니다.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 광경을 보러 오는 것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홍콩에 2년 거주했었는데, 막상 살면서는 잘 안 오게 되었습니다. 생활인이 아닌 여행자의 마음으로 홍콩을

다시 오게 되니,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가기 까지의 홍콩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은 아시죠?

홍콩이 어떻게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지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 그림은, 청과 영국의 "아편전쟁"을 묘사한 것입니다. 영국은 중국의 마지막 황제가 "푸의"의 "청"나라에게

아편을 수출하게 됩니다. 아편을 수출하며 대금은 "은"으로 받게 되죠. 중국도 영국으로 수출을 하게 되지만

중국은 무역적자에 민생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그로인해 많고 작은 시위 혹은 삼합회와 같은 범죄단체 등이

생겨나게 되고, 민생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영국과 아편의 수출을 막기 위해 "아편전쟁"을 하게 됩니다.

 

 

영국은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여 1842년 6월 상해를 점령하고 남경(난징)으로 진격합니다. 청나라는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라도 타협을 할 수밖에는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결국 1842년 8월 영국 함대의 갑판에서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역사적인 '남경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홍콩을 영국에 넘겨준다.
2. 광동, 하문, 복주, 영파, 상해 등 5개 항구를 개항한다.
3. 개항장에 영사를 주재시킨다.
4. 중국은 전쟁 배상금 1,200만 달러, 몰수된 아편 배상금 600만 달러 등을 3년 안에 영국에 지불한다.
5. 공행의 독점 무역을 폐지한다.
6. 수출입의 관세를 정한다.
7. 동등한 지위에 있는 양국 간의 문서 교환은 동등한 형식을 사용한다.

<난징조약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이 조약은 중국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인 조약이며 불평등 조약입니다. 이 조약으로 중국이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중화사상은 여지없이 깨졌으며 중국 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홍콩은 대영제국 최후의 유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중국은 제1차 아편전쟁(1839~1842년) 결과 1842년 홍콩을

영국에 영구 할양하였고, 제2차 아편전쟁(1856~1860년) 이후 카오룬 반도마저 1860년 영국령이 되었습니다.

 

1898년, 영국은 홍콩과 그 주변 도서 및 해역을 아우르는 "신계()" 지역을 99년간 임차하는 내용의 협정을 맺습니다.

이 영토는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홍콩은 자유항 구이자 대영제국의 무역 중심으로 무역 거상들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이들은 부유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했으나 중국인 주민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습니다. 훗날 값싼 노동력 덕분에 홍콩은 주요 제조업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99년으로 임차를 한 이유는, 영국이 99년 후에는 중국이 영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설마 그때까지 중국을

하나 못 먹을까?? 하는 영국의 기만한 생각으로 인해 99년이라는 기간이 생기게 된 것이죠.

 

다음 편에는 영국령이 된 이후의 홍콩의 모습을 담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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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 2019.09.05 16:11 신고

    송환법 철회요?
    홍콩 시위 관련 소식이 있었나요?
    뉴스를 아직 못 봤네요, 한번 확인해봐야겠습니다 :)
    좋은 소식일 수도 있겠네요, 감사합니다.

    • 2019.09.07 01:22 신고

      안녕하세요 제가 답글을 늦게 달았습니다.
      홍콩이 하루 빨리 안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방문해주시고 댓글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019.09.08 13:36 신고

    직접 찍으셨다는 홍콩사진
    너무 멋찌네요~
    홍콩에 관한 내용 잘 보고 갑니다~:)

  • 2019.09.13 23:4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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